검색결과: 203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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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신실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생존자복지위원장. 1980년대 후반 윤정옥, 김혜원과 함께 일본 조사활동을 시행했다. 이후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를 지원하면서 국민기금 반대 운동, 여성국제전범법정 개최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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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전 여성폭력문제특별보고관(1994~2003)이자 전 유엔 사무차장이다. 1995년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조사하고, 1996년 유엔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여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과 배상 등을 촉구했다. 보고서 발표 당시 일본 정부가 공인을 거부하자 유엔인권위원회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지지하는 회의가 조직되어 활동을 벌여 1996년 4월 최종 보고서가 공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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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학순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최초 공개증언자. 1991년 8월,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최초 공개증언했다. 이후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국민기금 반대 운동 등에 참여했다. 제1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김학순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8월 14일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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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배봉기

    재일조선인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최초 증언자. 충청남도 예산 출신. 1943년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으로 강제동원되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자 1975년 재류특별허가 신청을 위해 본인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다. 이후 김현옥, 김수섭, 오키나와 여성활동가 등 재일조선인들이 배봉기를 지원했다. 1970년대 후반 가와타 후미코가 배봉기를 인터뷰하여 <빨간 기와집(1987)>을 출간했다. 앞선 사건들을 계기로 1980년 윤정옥이 배봉기를 짧게 방문했지만 긴 만남을 가지진 못했다.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다시 방문했으나 만남을 거절했다. 2015년 4월 23일 배봉기를 기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부정을 용서치 않는 4.23 액션: 배봉기 할머니를 기억하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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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양징자

    재일조선인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공동대표. 1990년대부터 우리여성넷 멤버로 활동하며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운동에 참여했다. 1993년 송신도를 만나고 "재일한국인 전 종군위안부사죄, 보상청구 사건"을 지원하고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제작했다. 희망씨앗기금을 통해 한일 청소년, 청년 교류를 활발히 시키고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청년세대에 알리고 있다. 제6-7차, 11-12차 아시아연대회의 참석 및 발표하였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공동 대응(2016, 기독교 사상)>에서 전국행동의 활동을 정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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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모토오카 쇼지

    일본 참의원 의원 및 제24대 참의원 부의장. 모토오카 쇼지는 1990년 일본 국회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일본 국회에 <전시 성적 강제피해자 문제 조사회 설치법안>, <전시성적강제피해자 문제 해결 촉진에 관한 법률안 등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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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영삼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 1993년 취임하고 다음달 일본군'위안부'문제 배상은 필요없지만 진상규명은 필요하며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을 강조하여, 일본의 법적책임 회피를 눈감아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국민기금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피해자를 지원하겠다 밝혔으나, 한일정상회담 등에서 논의를 하지 않는 등 한일관계를 중시하여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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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대중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 1997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1998년 일본 잡지 <세카이>에서 국민기금에 반대입장을 표명하였지만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표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돌출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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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게이 맥두걸

    유엔인권위원회 산하 차별방지및소수자보호소위원회 특별보고관(1997~2001)이자 변호사다. 1998년 유엔에 <전쟁 상황에서의 조직적 강간·성노예·노예적 취급 관행에 관한 특별 보고서>를 제출했다. 일본군'위안소' 운영은 노예 제도 및 노예 거래 행위, 전쟁 범죄, 인도에 반하는 죄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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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오부치 게이조

    제84대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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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신혜수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이자 일본군'위안부'기록물세계기록유산공동등재를위한국제연대위원회 단장. 1990년대 활동 초기부터 정대협 실행위원으로 활동하여 UN, ILO 등 국제사회에서 로비 활동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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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문필기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3년 강제동원되어 해방 이후 귀국했다. 1992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여 수요시위에 매주 참여하였으며 1994년 일본 검찰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소, 고발장을 제출했다. 또한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증인으로 증언하는 등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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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윤순녀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이자 '평화의샘' 대표. 1992년 피해생존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계기로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운동에 함께하게 되었다. 1993년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를 설립하여 천주교 내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운동을 펼치고 1990년대 일본 증언집회, 1995년 북경여성대회(제4차 유엔 세계여성대회) 등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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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창록

    전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초대회장이자 연구자다. 1995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구조의 성격> 발표를 계기로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 남북코리아 검사단으로 참여하였으며 1965년 한일조약상의 문제, 2015년 한일합의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대표저서로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핵심은 불법강점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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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이인순

    전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대구시민모임' 대표. 대구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간사,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피해생존자 지원, 증언집회, 박물관 건립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제9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지난 10년 간 활동을 정리하여 발표했다. 이후로도 박물관 희움 운영 및 강연 진행, 영화 <보드랍게>에서 인터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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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이용수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4년 강제동원되어 1946년 귀환선으로 귀국했다. 1992년 커밍아웃한 뒤 여성국제전범법정, 제9차, 12-15차 아시아연대회의 등지에서 증언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낮은 목소리3- 숨결>에서 다른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에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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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분선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30년대 후반 취업사기로 강제동원되어 1943년 말 혹은 1944년 경 귀국했다. 1993년 커밍아웃한 뒤 증언집회, 여성국제전범법정 등지에서 증언했다. 김분선의 증언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집 2>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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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황금주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1년 강제동원되어 해방이후 귀국했다. 피해생존자 김학순의 증언에 힘을 얻어 1992년 커밍아웃 하고, 같은 해 유엔인권소위원회,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 등에서 증언했다. 2000년 <외국인불법행위손해배상청구법(Alien Tort Claims Act)>에 기반해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일본정부를 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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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순덕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37년 강제동원되어 1940년 일본장교의 도움으로 귀국했다. 1992년 커밍아웃한 뒤 수요시위 참여, 일본 순회집회, 제3차 아시아연대회의 등지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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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정진성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이자 '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원. 1990년대 활동 초기부터 '한국정신대연구소' 실행위원으로 증언 청취, 일본군'위안부'연구활동에 매진했으며 2015년 서울대학교 정진성연구팀을 결성하여 세계 각지의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기록물을 조사 및 수집을 진행했다. 대표저서로 <일본군성노예제(2006, 2016년 개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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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김윤옥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남측실행위원이었으며 1990년대 정대협 실행이사를 맡아 국민기금 반대운동 등에 참여했다. 여성국제전범법정 당시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2004년 국민기금 이사 와다 하루키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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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다카기 다카

    다카기 다카는 일본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위안부문제의입법해결을요구하는모임"에서 「전시성적강제피해자문제해결촉진법안」 입법 촉구 활동을 했다. 제6차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 및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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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강일출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3년 강제동원되어 1945년 조선인에게 구조되었다. 이후 중국에서 거주하다 2000년 국적을 회복하고 귀국했다.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증언하였으며 수요시위 참석 등 다양하게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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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마쓰이 야요리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 '아시아여성자료센터' 설립자. '아시아여성들의모임', '아시아여성자료센터', '바우넷재팬' 전 대표. 1998년 제6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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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나카하라 미치코

    '전시여성폭력일본연구액션센터(VAWW-RAC)' 공동대표이자 동남아시아사 연구자. 현 '전시여성폭력일본연구액션센터(VAWW-RAC)' 공동대표이자 '여성.전쟁.인권학회' 창립멤버. 여성국제전범법정 당시 '바우넷재팬' 부대표를 맡아 일본 측 사무 및 모금 등을 담당했다. 2006년부터 미야코지마 위안소 조사에 참여했으며 미야코지마 아리랑비 설립에 함께했다. 저서 <역사는 먹으로 칠할 수 없다(2015)>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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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쑤즈량

    중국 역사학자. 상하이사범대학교 교수이자 일본군'위안부'문제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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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지은희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및 제2대 여성부장관, 정의기억재단 이사장. 제3,4,5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에 대해 발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서 여성국제전범법정 주최에 함께했다. 이후 2015년 한일합의를 계기로 설립된 정의기억재단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하여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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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최갑순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33년 중국으로 강제동원되어 해방 후 귀국했다.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증언하였으며 2002년 미국 순회증언집회 등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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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시미즈 기요코

    일본 연구자이자 '여성.전쟁.인권학회'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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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스즈키 유코

    일본 여성사, 사회운동사 연구자. 일본군'위안부'문제와 천황제, 여성운동 등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일본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日本軍「慰安婦」関係資料集成)>을 등을 출간. 한국엔 <일본군'위안부'문제와 젠더(2010)>가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