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203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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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리상옥

    북한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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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리정조

    북한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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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리종녀

    북한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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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린다 차베스

    전 미국 노동부장관 및 정치평론가. 유엔의 ‘무력 분쟁 중 조직적 강간, 성노예제 및 그와 유사한 관행에 관한 특별보고관'으로 1995년 한국, 북한, 일본을 방문조사했다. 1996년 8월 유엔 인권소위원회에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룬 <무력 분쟁 중 조직적 강간, 성노예제 및 그와 유사한 관행에 관한 특별보고서> 1차본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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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마르디엠

    인도네시아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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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마리아 로사 헨슨

    필리핀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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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마쓰이 야요리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 '아시아여성자료센터' 설립자. '아시아여성들의모임', '아시아여성자료센터', '바우넷재팬' 전 대표. 1998년 제6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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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마이클 마코토 혼다

    미국연방 하원의원. 미국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자 제110~114대 하원의원. 일리노이주 민주당 의원들이 1997년부터 미국 의회에 지속적으로 제출한 결의안을 이어받아 2007년 상정했다. 2007년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ouse Resolution 121, 약칭 HR121)이 통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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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마페야붓 산티엔

    필리핀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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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및 UN 고등판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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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모토오카 쇼지

    일본 참의원 의원 및 제24대 참의원 부의장. 모토오카 쇼지는 1990년 일본 국회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고 일본 국회에 <전시 성적 강제피해자 문제 조사회 설치법안>, <전시성적강제피해자 문제 해결 촉진에 관한 법률안 등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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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무라야마 도미이치

    1994년 자유민주당·일본사회당·사키가케 연립내각에서 총리대신으로 지목되었다. 1994년 12월 아시아여성기금(일명 국민기금) 설립 안을 밝혔다. 기금 설립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5년 7월 모금호소문을 발표하며 국민기금을 발족했다. 1995년 전후50주년담화, 이른바 무라야마담화를 발표하였으며 2000년 정계를 은퇴하면서 국민기금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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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무라야마 잇페이

    '나눔의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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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무하마드 달마위 하라자마

    '인도네시아'위안부'지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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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문옥주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0년 강제동원되어 도망쳐왔다. 1942년 미얀마로 다시 강제동원되어 1946년 귀국했다. 1991년 김학순의 증언을 듣고 피해생존자라 커밍아웃한 뒤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 보상청구소송" 원고로 참여했다. 1992년 문옥주는 일본 우편국에 본인이 받은 팁 등을 저금한 <군사우편저금> 지급을 요구하였으며 제2차 아시아연대회의 참가, 일본 순회집회 등 다양하게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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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문필기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3년 강제동원되어 해방 이후 귀국했다. 1992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여 수요시위에 매주 참여하였으며 1994년 일본 검찰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소, 고발장을 제출했다. 또한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증인으로 증언하는 등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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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자민당 당대표이자 제78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1991년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목되었다. 1991년 12월 일본군'위안부' 관련 미군 공문서가 발굴되고 1992년 1월 아사히 신문에 요시미 요시아키가 발굴한 일본군 공문서가 보도되자, 1992년 1월 방한 당시 "위안부로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데 대해 충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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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민체

    인도네시아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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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명옥

    '종군위안부,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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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미좌자

    종군위안부문제우리여성네트워크'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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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순희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1년 중국으로 강제동원되어 해방 이후 귀국했다. 인권캠프, 미군'위안부'피해생존자들과 교류회 등에 참여하며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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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영심

    북한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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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옥선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1년 취업사기로 중국으로 강제연행되어 해방 이후에도 중국에서 지냈다. 2001년 마을주민의 제보 및 정신대연구소 등의 지원으로 방한. 2002년 귀국 및 '나눔의집'에 입소했다. 당시 박옥선은 사망자로 신고가 된 상태였기에 국내 입국 후 사망정정을 신고하여 국적을 회복했다. 이후 수요시위 참가 등 다양하게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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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윤남

    종군위안부문제우리여성네트워크'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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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종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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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박찬운

    법률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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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방청자

    재일조선인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일본군'위안부'문제 간사이네트워크' 공동대표. 1989년 윤정옥이 <한겨레>에 게재한 기사를 번역 및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1991년 <은폐된 역사에 지금 빛을! 조선인 종군위안부>를 발간했으며 1992년 4월 일본 내 신고전화 '종군위안부 110번' 개설에도 함께했다. 2000년대 중반 전국동시증언집회, 일본 지방의회 결의안 채택 운동 등을 펼쳤다.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바라면서(한국여성신학, 2002)>에 1990년대 활동에 대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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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배봉기

    재일조선인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최초 증언자. 충청남도 예산 출신. 1943년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으로 강제동원되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자 1975년 재류특별허가 신청을 위해 본인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다. 이후 김현옥, 김수섭, 오키나와 여성활동가 등 재일조선인들이 배봉기를 지원했다. 1970년대 후반 가와타 후미코가 배봉기를 인터뷰하여 <빨간 기와집(1987)>을 출간했다. 앞선 사건들을 계기로 1980년 윤정옥이 배봉기를 짧게 방문했지만 긴 만남을 가지진 못했다.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다시 방문했으나 만남을 거절했다. 2015년 4월 23일 배봉기를 기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부정을 용서치 않는 4.23 액션: 배봉기 할머니를 기억하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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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배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실행이사이자 '기억의터추진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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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백넙데기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39년 인신매매로 강제동원되고 해방 이후 중국에 남겨졌다. 2003년 하상숙과 함께 귀국하여 인권캠프 등에 참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 주춧돌 후원 등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