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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2463건 / 76-100건 출력
Creator | Date | Title | Identifier | Languag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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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방청자 | PEO0170 | 재일조선인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일본군'위안부'문제 간사이네트워크' 공동대표. 1989년 윤정옥이 <한겨레>에 게재한 기사를 번역 및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1991년 <은폐된 역사에 지금 빛을! 조선인 종군위안부>를 발간했으며 1992년 4월 일본 내 신고전화 '종군위안부 110번' 개설에도 함께했다. 2000년대 중반 전국동시증언집회, 일본 지방의회 결의안 채택 운동 등을 펼쳤다.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바라면서(한국여성신학, 2002)>에 1990년대 활동에 대해 정리했다. | |||
[인물] 요시카와 하루코 | PEO0151 | 일본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전 참의원 의원. 2001년 <전시성적강제피해자문제 해결촉진에 관한 법률안(약칭 3야당법안)>을 공동 제출했다. 제10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입법해결 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 |||
[인물] 윤미향 | PEO0101 |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및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21대 국회의원. 1990년대 초기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에 함께하여 국민기금 반대 운동, 여성국제전범법정, 결의안 통과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제1차, 6차, 8~15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발표했다. | |||
[인물] 마쓰이 야요리 | PEO0046 |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 '아시아여성자료센터' 설립자. '아시아여성들의모임', '아시아여성자료센터', '바우넷재팬' 전 대표. 1998년 제6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여성국제전범법정을 발의했다. | |||
[인물] 와타나베 미나 | PEO0176 | '여성들의전쟁과평화자료관(WAM)' 관장. 아시아여성자료센터', '바우넷재팬',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위한전국행동' 등에서 활동했다. NHK 편파보도 소송, UN 등 국제사회 로비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2019년 '여성들의전쟁과평화자료관(WAM)'관장으로 취임하였다. 제6, 10, 1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발표했다. | |||
[인물] 니시노 루미코 | PEO0097 | 일본 여성운동활동가이자 전 '바우넷재팬' 공동대표. 1990년 초반부터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운동에 함께하여 국민기금 반대운동, 여성국제전범법정, NHK 편파보도에 대한 소송 운동 등을 펼쳤다. 제5~9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발표했다. | |||
[인물] 시미즈 기요코 | PEO0071 | ||||
[인물] 나카하라 미치코 | PEO0047 | '전시여성폭력일본연구액션센터(VAWW-RAC)' 공동대표이자 동남아시아사 연구자. 현 '전시여성폭력일본연구액션센터(VAWW-RAC)' 공동대표이자 '여성.전쟁.인권학회' 창립멤버. 여성국제전범법정 당시 '바우넷재팬' 부대표를 맡아 일본 측 사무 및 모금 등을 담당했다. 2006년부터 미야코지마 위안소 조사에 참여했으며 미야코지마 아리랑비 설립에 함께했다. 저서 <역사는 먹으로 칠할 수 없다(2015)> 등 다수가 있다. | |||
[인물] 김복동 | PEO0079 |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40년 일본군'위안부'로 동원되어 1947년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귀국했다. 1992년 커밍아웃을 한 뒤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증언했다. 이후 잠시 활동을 쉬다가 2010년 정대협 운영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하고 의료 지원 등을 받으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영화 <낮은 목소리2>, <김복동>에서 김복동의 삶을 그렸다. | |||
[인물] 고빈 켈커 | PEO1980 | 인도의 연구자.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이자 태국 아시아공과대학(AIT) 겸임교수. '여성법개발에관한아시아태평양포럼(APWLD)' 대표로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발표했다. | |||
[인물] 솜키드 마이샤 | PEO1725 | ||||
[인물] 차오진아이 | PEO1179 | ||||
[2006-08-09] 제721차 수요시위 및 해방 61주년 세계연대의 날 집회 개최 | D1211-1 | 9개국 15개 도시에서 "해방 61주년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제721차 수요세계연대집회"를 개최했다. | |||
[2008-09-07]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일본군'위안부' 추모비 제막식" 개최 | D1347 | ||||
[2009-09-06] 정대협,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아리랑 추모비 1주년 기념행사" 참석 | D1487 | ||||
[2004-09-06] 한국정부,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법> 제정 | D1011-1 | 한국정부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하여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본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다. | |||
[2001-04-01] 일본 문부과학성, 역사부정주의 교과서에 대한 검정 통과 | D0823-1 | 일본 문부과학성은 '새로운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에서 제작한 후소샤 역사교과서 검정을 통과시켰다. 후소샤 역사교과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고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등의 문제를 가졌다. 따라서 정대협, 민족문제연구소 등 60여개 단체가 모여 '한일교과서 바로잡기운동본부'를 결성하였다. | |||
[1992-10-31]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생활시설 '나눔의집' 개소 | D0117-1 | ||||
[인물] 넬리아 산초 | PEO0238 | 필리핀 여성운동활동가이자 '가브리엘라여성회' 공동설립자. 1970년대 필리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가브리엘라여성회'를 조직했다. 1991년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알려지자 필리핀 조사활동, 피해생존자 지원 등을 시작했다. 제1-4차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하여 발표했다. | |||
[인물] 최금춘 | PEO1982 | ||||
[인물] 백넙데기 | PEO0229 |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 1939년 인신매매로 강제동원되고 해방 이후 중국에 남겨졌다. 2003년 하상숙과 함께 귀국하여 인권캠프 등에 참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 주춧돌 후원 등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했다. | |||
법적책임규명운동 | AD0003 | ||||
수요시위 | AD0002 | ||||
[인물] 한국염 | PEO0104 |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이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 제1차 아시아연대회의를 계기로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국민기금 반대운동, 여성국제전범법정 등 개신교 여성운동에 기반하여 왕성히 활동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여성운동30년사(2014)> 등에서 개신교의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운동에 대해 정리했다. | |||
[인물] 다카하시 기쿠에 | PEO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