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시위 컬렉션



"1980년대 말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여성운동을 크게 성장시켰다. 여성운동의 성장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꾸준히 일구어온 일본군 '위안부' 연구와 운동을 일시에 개화시켰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년사 中



[기록물1. 제1차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팔을 치켜 올리고 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30여년 넘게 이어진 수요시위의 시작을 알리는 이 날의 시위는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한국 여성운동이 성장하는 흐름 속에서 일어났다.


[기록물2. 일본 수상 방한반대 거리행진 정신대 배상, 공식사과 요구 신문 스크랩]

1990년 11월 한국의 거의 모든 여성단체가 연대하여 결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수요시위 이전에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한국과 일본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록물3. 제1차 수요시위 사진 : 1992년 1월 8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차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팔을 치켜 들고 있다]

1991년 12월 정기 수요시위를 결의할 때만 해도 지금에 이를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도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며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요시위를 멈추지 않았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를 향한 요구의 장이자 국내외 활동보고와 연대의 장으로 만들어 왔다. 수요시위는 올바른 역사인식의 함양과 인권교육의 현장, 피해자와 시민이 함께 치유와 다짐을 실행하는 구심점으로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기록물4. 1600차 수요시위 사진 : 1600차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으로 1600을 표현하고 있다]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12시 평화로(서울시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일대)에서 진행된다. 관련 정보는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와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록구성

- 문서 : 약 8,000건
- 성명서 및 순서지
- 일지
- 준비총괄
- 보도자료
- 발언문
- 언론보도
- 참가 신청서
- 국제연대 관련
- 국내연대 관련
- 유네스코 등재신청
- 사진 : 약 18,000건
- 영상 : 약 1500건
- 음성 : 약 230건
- 박물 : 약 100건
- 피켓
- 현수막
- 의류

컬렉션 히스토리

수요시위 컬렉션은 현재 정리중이며, 추가로 생산-수집하는 기록물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검색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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